
앨런 블룸 《미국정신의 종말》 범양사
앨런 블룸이 1987년 《미국 정신의 종말》에서 경고했던 상대주의의 만연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전례 없는 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그가 우려했던 "모든 것이 동등하다"는 사고방식이 이제 알고리즘의 힘을 빌려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의 삶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블룸은 (1980년대 미국) 학생들이 "그건 당신 의견이고, 이건 내 의견이야"라며 대화를 차단하는 현상을 비판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알고리즘이 나에게 맞춤형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개인화된 피드와 추천 시스템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현실을 제공하며, 공통의 진실이나 기준점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수가 진실의 척도가 되고, 검색 결과의 상위권이 권위의 근거가 된다. 이는 블룸이 경계했던 "인기 있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대중주의적 사고의 극단적 진화다. 더 심각한 것은 AI가 이런 편향을 강화하고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블룸은 록음악과 TV가 젊은이들의 집중력을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쇼츠(Shorts)와 TikTok의 짧은 영상과 ChatGPT의 즉석 답변에 익숙해져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구글에 검색하고, 복잡한 문제는 AI에게 물어본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 구글에 검색하던 사람들은 유튜브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던 사람들은 쇼츠(Shorts)에 검색을 한다. 그러나 이런 편리함은 스스로 사유하고 탐구하는 능력을 서서히 잠식할뿐더러 자신도 모르는 편향에 잠식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은 청소년들에게 "모든 답이 존재하며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지혜는 "모르는 건 AI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안이함으로 대체되고 있다. 무지의 자각이라는 철학적 출발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블룸이 우려했던 문화 상대주의는 이제 개인 정체성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청소년들은 온라인에서 수없이 많은 정체성 모델을 접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하기 어려워한다. 인플루언서 문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상형을 제시하고, AI 필터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린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들이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와 '팔로워' 수는 자존감의 지표가 되었고, 온라인 반응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블룸이 말한 내적 확신의 부재가 극단화된 모습이다. 국가 차원에서의 청소년 SNS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위와같은 심각성에 대해 지적한다.
다가올 미래 AI 채팅봇과의 대화에 익숙한 세대는 실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실제 채팅에 익숙한 세대에서 실제 대화를 두려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며, 이에 따라 전화 포비아등도 생기고 있다. 예측 가능하고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 AI와 달리, 실제 인간은 복잡하고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깊이 있는 관계 형성 능력이 퇴화하고, 역설적으로 연결의 시대에 더욱 고립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블룸이 지적한 "진정한 대화의 부재"는 이제 AI와의 일방적 소통으로 대체되고 있다. 반박과 도전이 없는 편안한 대화는 성장의 기회를 차단한다.
블룸의 처방은 여전히 유효하다. 위대한 텍스트와의 만남, 진지한 대화, 비판적 사고의 훈련이 그것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몇 가지가 추가되어야 한다.
첫째, 디지털 리터러시를 넘어 AI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AI의 한계를 인식하며, 인간 고유의 사고 영역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의도적인 단절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보의 과잉 속에서 홀로 사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이 중요하다. 즉석 답변에 익숙한 세대에게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견디며 천천히 탐구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블룸이 걱정했던 "정신의 종말"은 AI 시대에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와 효율성은 분명 가치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적 능력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교육의 목표는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할 수 없는 것—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 창의적 상상, 깊이 있는 관계 형성—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욱 인간다운 능력이 소중해진다는 역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디지털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다루는 기법이 아니라, 기술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는 지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시대 교양교육이 아닐까.
|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 Why Machines Learn, 아닐 아난타스와미 (7) | 2025.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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